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풍양 조씨 (문단 편집) === 호군공파(護軍公派) / 회양공파(淮陽公派) / 금주공파(錦州公派) === 고려 중기 천화사전직(天和寺殿直)을 지낸 전직공(殿直公) 조지린(趙之藺)을 1세로 삼고 있다. 그래서 이 세 파를 통틀어 전직공계(殿直公系)라고 하기도 한다. 전직공의 후손은 아래 설명할 3개 파로 나뉘는데, 전직공의 6세손인 대언공(代言公) 조염휘(趙炎暉)[* 고려사엔 趙炎輝로 기록되어있다. 부인은 밀양 손씨 손원계(孫元桂)의 딸이다.][* 삼남 조신이 [[고성 이씨]] [[이암(고려)|이암]]의 딸에게 장가간 관계로 조염휘의 이름이 고성 이씨 족보에도 기록되어있는데, 이에 따르면 조염휘는 보문각 대제학을 지냈다고 기록되어있다.]의 장남, 3남, 4남의 후손들이다. 대언공은 슬하에 4남 1녀를 두었다. 차남 상서공(尙書公) 조사공(趙思恭)은 1358년 [[신돈]]을 처치하려다 발각되어 곤장을 맞고 유배를 떠나던 도중 신돈이 보낸 자객에 의해 사망하였다. 딸만 넷 두어 남계 후손이 없다. 전직공계의 후손들은 자신이 무슨 파인지 설명할 때는 전직공파/전직공계라는 말을 쓰지 않고 아래 3개 파중에 하나라고 설명한다. * 호군공파(護軍公派)[* 호군(護軍)은 고려 때 정4품 관직으로, 중앙군 소속 지휘관이다. 원래 호칭은 장군이었다가 공민왕 때 호군으로 개칭되었다.]: 조지린의 6세손인 조염휘(趙炎暉)의 장남 조사충(趙思忠)을 중시조로 한다. [[상주시]]에 집성촌이 있다. 후손 1만 4천여 인이 있다. * 회양공파(淮陽公派)[* 회양부사(淮陽府使) 관직을 지냈다. 회양은 지금의 [[강원도(북한)|강원도]] [[회양군]]이다.]: 조염휘의 3남 조신(趙愼)[* 원래 사렴(思廉)이었다가 신(愼)으로 개명했다. 아래 조임/조덕린이 동일인물인 것인지 불분명한 것과는 다르게 조신/조사렴은 동일인물임이 확실하다. 조선 태조가 왕위에 오르기 전 조신에게서 글을 배웠다 한다. 세도정치의 중심인물이었던 조만영, 조인영 형제가 조신의 후손이다.]을 중시조로 한다. [[부여군]]을 비롯한 충청남·북도 곳곳과 [[춘천시]]를 비롯한 강원도 곳곳, [[군산시]]를 비롯한 전라북도 곳곳에도 집성촌이 있다. 후손이 5만 8천여 인(2000년 기준)으로, 풍양 조씨 전체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회양공 조신은 부인 고성 이씨([[이암(고려)|이암]]의 딸)와 슬하에 장남 안평, 차남 개평을 낳았다. 둘째 형인 상서공 조사공이 연루된 사건으로 인해 멸문지화의 위기가 닥치자 회양공 조신은 차남 개평과 함께 충남 부여로, 부인 고성 이씨는 장남 안평과 함께 친정아버지의 연고지였던 춘천으로 피신했다. 후에 조안평은 공조 좌랑까지 올랐다. 태조실록에는 '조안평의 모친 이씨는 일찍이 가장을 잃고 살면서 수절하고 아들을 훌륭히 교육시켜 벼슬에 나아가게 했다'는 내용과 '마을 어귀에 정표(旌表)하게 하여 효행의 사실을 널리 알리도록 하라' 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 때 부인에게 정려문이 내려졌으나 현재는 실전되었다. * 금주공파(錦州公派)[* 지금주사(知錦州事) 관직을 지냈다. 금주는 지금의 [[충청남도]] [[금산군]]이다.]: 조염휘의 4남 조임(趙𥙛[* ⿰示任. 유니코드 확장한자이다. 1970년 이후에 발간된 족보에는 袵(⿰衣任)으로 나와있는데, 당시엔 이 글자를 타자로 입력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풍양 조씨 족보에 의하면 원래 이름은 덕린(德麟)이었다가 임(𥙛)으로 개명했다고 한다. 다만 이 부분은 불분명한 부분이 있는데, 최초 발간 족보였던 신해보(1731)에서는 조덕린과 조임이 동일인물이 아닌 부자관계로 기록되어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르면 조염휘의 4남이 조덕린, 조덕린이 나광만(羅光萬)의 딸에게 장가가서 얻은 외아들이 조임이다. 또한 강릉 김씨 족보에서는 19세손 김지복(金之福)의 둘째 딸이 조임에게 시집간 것으로 기록되어있는데, 그 주석에 豊壤人判事父直提學德麟祖右代言炎暉...(풍양 조씨이고 판사를 지냈다. 아버지는 직제학 조덕린이고 조부는 우대언 조염휘이다. ...)라고 기록되어있다. 이로 보아 정황상 조임은 조염휘의 아들이 아닌 손자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나, 현재 족보에서는 조덕린과 조임이 동일인물이고, 첫째 부인이 나광만의 딸, 첫째 부인을 잃은 후 다시 장가들어 얻은 둘째 부인이 김지복의 딸인 것으로 기록되어있다.]을 중시조로 한다. [[포천시]]와 [[양주시]]에 집성촌이 있다. 후손 3천여 인이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